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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와라] 핼러윈 파티
10월 31일의 어느 평범한 날이었다. 핼러윈이라고 하여, 일본 전역 곳곳에서 행사가 벌어지고 있었고 어린 아이들은 분장을 하고 친구 집에 가 사탕을 받아올 생각에 들떴지만 고등학생인 스가와라菅原에게는 별 의미 없는 많은 날 중 하나일 뿐이었다. 마침 영어 시간이 들었던 덕에 영어를 가르치는 하야미速水 선생이 호박 모양 사탕을 나누어 주어서 그렇구나, 오늘이 핼러윈이구나 깨달았을 뿐이었다. 같은 부 후배인 히나타日向 역시 같은 선생에게 수업을 듣는 모양으로, 부활동이 끝난 후 호박 모양 사탕을 입에 쏙 넣으며 좀비인 척 무서운 소리를 내었다. 그 뿐이었다. 동급생인 두 친구들과 집으로 가는 길을 같이 걸을 때까지도 핼러윈이 그에게 별다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는 생각도 않고 있었다.
스가와라는 같이 하굣길을 걷던 세 사람 중에서 홀로 집이 동떨어져 있던 탓에 나머지 둘과 헤어지고 나서도 밤길을 한참 걸어야 했다. 그는 친구들에게 내일 보자며 손을 흔들어준 후에 부쩍 쌀쌀해진 날씨를 욕하며 져지 상의를 꼭 여몄다. 아직 가을이었지만 벌써 해가 짧아지고 있었으므로 하늘은 어두워진 지 오래였다. 스가와라의 집으로 가는 길목에는 야트막한 산이 있었다. 어쩐지 싸한 느낌이 들어, 그는 휴대전화의 화면 밝기를 최대로 맞춰 두고 그를 앞세워 산길을 걸었다. 그렇게 걷던 중에 그의 귓가에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스가와라는 제 귀가 어떻게 되어 버렸나 하는 의심을 했다. 산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크기의 작은 산에서 누군가가 떠들 일이 없었다. 그는 휙 얼굴을 돌려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그는 꽤나 놀랐다. 흙길에 반짝거리는 불빛이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불빛이 있었다, 라고 쓰기는 애매하다. 대관절 불빛이 떨어져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래 바꿔 말하자면, 빛나는 무언가가 산길을 따라 놓여 있었다. 스가와라는 그것이 헨젤과 그레텔에서 나올 법한 조약돌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왠지 마음이 끌려 불빛이 그를 인도하는 대로 따라갔다. 본래 그렇게 깊고 큰 산이 아니었는데 어째서 그렇게 나무들이 무성한지는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렸다. 스가와라가 다시금 멀뚱하니 산 속을 바라보는 사이에 둥둥 울리는 북소리를 필두로 유량한 관악대의 연주가 산 전체에 메아리쳤다. 그 연주가 그에게는 자기에게 오라는 환영의 음악으로 들렸다. 스가와라는 갑자기 흥이 나 불빛을 따라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음악은 어느새 변조를 했는지 단조로 바뀐 채 클라리넷이 어딘가 서늘한 느낌의 독주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그는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아니, 알아챘는데 알아채지 못한 척하고 있었다. 등 뒤에 남는 찝찝한 느낌을 지우기 위해서. 몇 분 정도를 신 나게 달려가다가, 그는 마침내 멈춰 섰다. 커다란 저택 안에서 환한 불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체 모를 음악 소리도 그 저택에서 울려 퍼진 것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저택의 대문을 열어젖혔다. 끼익, 하고 기분 나쁜 마찰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마당은 사람의 기척이 없이 써늘했고 식물은 죄다 죽어 있었다. 고급스러운 저택치고는 관리 상태가 거의 폐가나 다름없네, 중얼거리며 시끄러운 소리가 틈을 타고 새어나오는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스가와라는 눈앞의 광경에 까무러칠 뻔했다. 입가에 피를 묻힌 귀신부터 사고라도 당한 양 온 얼굴이 피와 상처로 가득한 좀비와 피부색이 시퍼런 강시까지, 온갖 무섭고 징그러운 것들을 모아 둔 것 같았다. 붉은색과 황금색으로 장식된 고풍스러운 그러나 낡은 카펫이 바닥에 넓게 펼쳐져 있었고, 약간 으스스해 아름다운 실내 장식에 대비되는 촛불은 잭 오 랜턴으로 대체하여 불빛을 실내에 은은하게 퍼져 나가도록 했다. 지하 감옥마냥 여기저기에 놓여 있는 쇳덩이들은 스가와라가 겁을 집어먹고 뒷걸음질을 슬슬 하게 만들기에 최적의 조건을 형성했다. 그러나 그때 처녀귀신 한 명이 스윽 웃으며 장난스레 말했다.
“핼러윈 파티인데, 뭘 그렇게 무서워 해.”
아, 핼러윈. 그제야 스가와라는 그 모든 의문이 해결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조금 사실적인 귀신들은 분장한 사람인 것이다. 이 사람들은 핼러윈 축제를 위해 모인 것이고, 정말 멋진 그러나 조금 꺼림칙한 이 저택은 그를 위한 장소인 것이다. 마치 유령들의 무도회 같은 이 핼러윈 파티는, 그러니까 조금 수상하지만 아주 정상적인 파티다. 스가와라는 제 안의 모든 의심을 마음 속 깊숙한 곳으로 밀어 넣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스가와라가 옴으로써 잠시 잦아들었던 음악 소리도 스가와라의 입가에 안도의 미소가 번져나감에 따라 점점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좀비들은 꺾인 몸으로 춤을 췄고, 강시들은 부적을 마치 패션 아이템마냥 달고선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스가와라는 그 자신도 놀랄 만한 친화력으로 귀신들과 이야기하며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귀신들을 따라 무서운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 파티장 곳곳에 있는 타르트 같은 핑거푸드들은 신선하고 황홀하기까지 한 맛이었고, 음료의 달큼한 맛은 부드럽게 혀를 감아 입 속에서 은은하게 남았다. 스가와라는 이런 파티는 생전 처음이라고 느꼈다. 어느새 그는 좀비와 귀신들이 전혀 무섭지 않음을 느꼈다. 화난 표정을 짓고 있는 잭 오 랜턴조차 사랑스럽게 보일 지경이었다. 무섭기는커녕 차라리 자신도 저렇게 분장하고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들과 같아지고 싶었다는 표현이 옳겠다. 스가와라는 그들에게 점점 동화되고 있었다. 스가와라
그러던 와중, 스가와라는 시간이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지금쯤이면 자정은 됐을 거였다. 무슨 생각을 하고 놀았는지,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 말이 거짓이 아님을 몸소 증명해 버렸다. 스가와라는 바쁘게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본 한 좀비가 다급히 소리쳤다.
“어디 가? 아직 더 놀아야지. 가지 마!”
스가와라는 붙임성 좋게 웃었다. 너무 늦어서, 이제 가야 할 것 같네요. 즐거웠어요. 그렇게 말하고 손을 들어 흔들려고 하자, 그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귀신들은 출구 앞에 인간 바리케이드를 쳐서 막았다. 좀비들은 끈질기게 그의 손과 발을 잡아 막았다. 나머지는 모두 그에게 다가가 가지 말 것을 애원했다. 모두가 스가와라의 귀가를 결사반대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실로 그러고 있었다. 그는 조금 당황했다. 스가와라는 집에 가는 길에 잠깐 들러 즐기다 가면 되는 것뿐인데 이들은 왜 이렇게 흥분해 제가 가는 것을 막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드니 더욱 이 상황이 수상하고 이상하게 여겨져 어물거리다가 발을 뺐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이 달라붙어 못 가게 막는 것이었다. 그쯤 되면 아무리 그들과 동화되고 있던 스가와라라도 당황하며 도망치려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놔 주세요! 시간이 늦었습니다. 다음에 봐요.”
그렇게 외치고, 스가와라는 귀신들 사이의 틈으로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귀신들은 합세하여 그를 물고 놓지 않았다. 그는 결국 귀신과 좀비들을 주먹으로 때리며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꽁무니가 빠져라 도망치는 그를 좀비들이 뒤틀린 몸을 이끌고 쫓아갔다. 다시 한 번 스가와라는 선두로 쫓아오는 좀비를 발로 차고 급히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계속 쫓아올 것이 뻔했으므로 그는 도망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고 저 뒤에서 기괴한 신음이 들리는 것을 알아챈 후, 그는 조심스럽게 뒤돌아 저택을 바라보았다. 저택에서는 백 명에 달하는 귀신과 좀비, 강시들이 서로 밀치고 때리며 앞으로 나아가려고 기를 쓰고 있었다. 한편 선두 측에 속하는 좀비들은 대문에 달라붙어 으르렁거리는 신음을 뱉고 있었다. 스가와라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곧장 집으로 뛰어갔다. 뛰어가는 내내 불안함에 제 몸뚱이를 살폈다.
집 문 앞에 도착해 깊은 복식호흡을 한 후, 스가와라는 문을 따고 들어갔다. 놀랍게도, 스가와라의 부모가 집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울고 있었다. 스가와라가 들어가자 그들은 놀라며 스가와라에게 뛰어가 몸 상태를 살피는 것이었다.
“괜찮은 거지, 코우시孝支?”
“…… 왜 그러세요?”
스가와라의 모는 멍하니 그를 응시하다가 놀람과 두려움이 섞인 미묘한 표정으로 개탄했다.
“네가 삼 일 만에 들어왔잖니!”
* * *
예전에 학교 때문에 간단히 썼던 글입니다. 지금은 읽기조차 부끄러워 수정은커녕 오자 검토도 안했답니다(ㅋㅋㅋ) 티스토리가 휴면 계정이 되어 있더군요... 그 정도로 아무것도 안 올린 게 죄스러워서 억지로 아무거나 올려 봅니다 ㅋㅋㅋㅋ 원고 때문에 글을 잘 못 썼어요 여러분 켄히나 쿼드지 향일화向日花 많이 봐주세요...
생각해 보니 핼러윈이군요...? 핼러윈 10월 31일 오늘 2월 22일...? 오 스가스가스가데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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