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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와라 코우시] 생일
스가와라 코우시 생일 합작 제출용으로 쓴 글입니다.
쓴 건 오래되었는데 공개가 늦었네요. 스가와라, 늦게나마 생일 축하해. 사랑해:)
땀 냄새가 가득한 부실 안에서, 스가와라는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합숙 일정을 확인하려는지 달력을 들추던 사와무라가 무언가 생각난 듯 스가와라에게 말을 걸었다.
“스가, 우리 합숙 둘째 날 네 생일이더라.”
“응? 어라……. 진짜네.”
“뭐야, 네 생일인데 왜 몰라.”
“음, 그야 별로 중요하지 않잖아?”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하며 입속에 돌던 말을 몰래 삼켰다. 그래 봤자 그냥 하루였다. 생일을 꽤나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기야 한 모양이었지만, 스가와라 본인은 아니었다. 게다가 바로 전 해의 생일에는―
스가와라는 스가, 하고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퍼뜩 생각에서 벗어났다. 사와무라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옆에서 아즈마네가 울상을 짓는 것을 한 손으로 가려 버리고, 그리고 그는 웃어 보였다. 언제나처럼.
“도쿄다―!”
“한두 번 오는 것도 아니면서, 대체 언제까지 그럴 거야?”
스가와라는 주장을 내세워 후배들이 또 다시 투닥거리려는 것을 말리고 합숙소를 휘 둘러보았다. 도쿄 합숙은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니었지만, 이 시기에 오는 것은 처음이었고 꽤 오랜만의 합숙이기도 했다. 부원들은 그들을 맞으러 나온 네코마 배구부의 주장을 따라 짐을 풀기 위해 합숙소로 들어섰다.
짐을 대충 정리하고 향한 식당은 여느 때와 같이 맛있는 냄새를 풍겼다. 갓 지은 밥의 고소한 냄새는 미야기에서 도쿄까지 올라온 허기진 위를 자극하고야 말았는지, 카라스노 쪽 식탁에는 밥이 고봉으로 담긴 밥그릇들이 잔뜩 올랐다. 1, 2학년들은 이상한 기합과 함께 무서운 기세로 젓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 스가와라는 자신이 아이들의 부모라도 된 양 흐뭇하게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가 밥을 처음으로 떴다. 아니, 뜨려고 하는 중이었다.
“아, 맞아. 내일 스가 생일이다?”
“스가라면……. 너희 2번 아닌가?”
“어, 우리 부주장. 어떻게 합숙에 딱 겹쳤더라.”
안 들릴래야 안 들릴 수가 없었다. 쿠로오와 사와무라는 바로 대각선에서 신 나게 떠들고 있었다. 더군다나 자신의 이름이 크게 불렸는데 눈치를 챌 수밖에 없었다.
스가와라는 속에서 무언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막 집어 들었던 젓가락이 힘없이 떨어져 식탁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급하게 공기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손이 벽을 잡고 버텼다. 그는 놀랐는지 눈을 크게 뜬 부원들 앞에서 겨우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로 비틀비틀 뛰어갔다. 부원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스가와라는 가까스로 도달한 복도에서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무릎을 꿇고 바닥을 짚은 그는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것이, 꼭 죽지 않으려 아등바등 애를 쓰는 것 같았다.
싫어. 작은 웅얼거림이 차가운 바닥을 맴돌았다.
싫어? 네가 초래한 일이잖아, 코우시. 들리지 않는 말이 스가와라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스가와라는 뻗친 머리카락을 그러쥐고 흐느꼈다. 투명한 눈물이 칼날이라도 되는 듯 미끄러진 살갗을 긁었다. 붉게 일어난 피부가 아팠다.
스가와라는 간신히 눈물자국을 닦아내고 비척비척 자리로 돌아왔다. 스가와라를 가장 먼저 눈치챈 사람은 아즈마네였다. 아즈마네는 그의 기운 없는 발걸음을 알아차리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스가, 괜찮아?”
“아, 으응…….”
아즈마네에 이어 부원들과 매니저들, 코치들이 그에게 다가갔다. 스가와라는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속이, 좀 안 좋아서요……. 저기, 방에 누워서 조금 쉬어도 괜찮을까요.”
코치는 서둘러 그를 보냈다. 식당은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한편, 스가와라는 화장실에서 연신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먹은 것이 없으니 나올 것도 없는 것이 당연했다. 스가와라는 맑은 변기 물을 그저 바라보다 화장실을 나갔다.
방에 대자로 드러누웠지만 마음은 좀처럼 편안해지지 않았다.
식당에서는 스가와라의 이야기가 나온 참이었다. 스가와라가 정말 많이 아픈가 보다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엔노시타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기, 스가와라 선배 작년 생일 말이에요. 그 때, 그 일 있었잖아요.”
카라스노 3학년들은 모두 벙찐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엔노시타는 당황스러운 듯 재차 물었다. 정말 그거 몰라요?
“작년에 선배, 자살…… 하려고 하셨던 거요.”
…… 뭐? 가장 먼저 입술을 움직인 건 사와무라였다. 엔노시타는 그제서야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을 이해한 듯, 말을 아끼려고 했지만 주장에게 지고 말았다. 스가와라 선배, 작년 생일에 우울증으로 자살하려고 하셨는데……. 모르셨어요? 그 후로 생일에 트라우마 생기셨잖아요.
스가와라는 방에 마치 흘러내린 액체처럼 누워 있었다. 기운이 없었다. 합숙을 포기할까 생각도 했으나 자신에게 지긴 싫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어서 약을 먹을 수도 없었다.
‘젠장, 그러게 왜 와서……. 또 이럴 줄 알았잖아.’
스가와라는 자신을 탓했다. 합숙을 하면서 자신의 생일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리가 없었다. 어쩌면 엔노시타 말고도 알고 있는 사람이 더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가 그런 식으로 소비되는 것을 원치 않았고, 동정의 시선은 삼 학년인데 벤치네, 정도로 족했다.
누워서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누군가 문을 똑똑 두드렸다.
“누구세요…….”
“아, 저 츠키시마인데요.”
츠키시마는 1학년으로, 남의 사생활에 왈가왈부할 아이가 아니었다. 걱정되었나 싶어 짐짓 쾌활한 척 들어오라고 소리쳤다. 물론 그 말은 큰 소리가 아니라 작은 비명 정도로 나왔다.
츠키시마는 머뭇거리며 문을 열었다. 평소의 츠키시마답지 않았다. 남의 말을 비꼬고, 비아냥거리는 것이 일상인 아이였다.
“아직도, 우울증 못 고치셨나요.”
스가와라는 심장이 덜컹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들었구나. 엔노시타일지 다른 누구일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아마 엔노시타였다면 모두가 알겠지 싶어 말을 꺼냈을 것이다. 그리고 츠키시마의 표정으로 보아, 그 예상은 얼추 맞는 듯했다.
츠키시마는 여전히 머뭇거렸다. 스가와라는 더 할 말이 있나 싶어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저도 우울증 때문에 고생한 적이, 있어서. …… 혹시나 하고요.”
“…….”
“……실례했습니다. 주장이 오후 연습 할 수 있겠냐고 묻던데요.”
“아……. 응, 될 수 있으면 참여하겠다고 말해 줘. 시간 맞춰 그리로 갈게.”
츠키시마는 조용히 목례하고 문을 닫았다. 의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병이 사람을 가려 가는 것은 아니니 의외라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스가와라는 잠시 고민하다 츠키시마가 머뭇거리다 결국 뱉고 도망치듯 자리를 뜬 마지막 말을 곱씹어 보았다. 츠키시마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괜찮아요, 라고.
오후 연습 시간이었다. 시작 시간에 맞춰 아슬아슬하게 체육관에 나타난 스가와라에게 모두들 인사를 건넸다. 생일 이야기나 작년의 이야기는 아무도 꺼내지 않았다. 그 이야기는 모두가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의식적으로 건드리지 않으려는 부분이었다. 물론 스가와라 또한 그것을 알고 있었다.
카라스노의 연습은 전의 합숙과 다르지 않았다. 스가와라의 일 때문에 처음에는 전체적인 흐름을 망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호흡이 맞아 갔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스가와라는 중간에도 여러 번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했다. 벤치 멤버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것도 다행이었다.
스가와라만 잠에 든 밤이었다. 카라스노 배구부 부원들은 모여서 상의하고 있었다.
“스가, 어떡하지.”
아즈마네의 말이었다.
“합숙은 어떻게든 될 것 같습니다만.”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왕님.”
“저어, 우리가 무언가 좋은 기억을 만들어 드리면 트라우마가 사라지지 않을까요?”
야마구치의 말에 이어 니시노야가 아이디어를 냈다.
“그거 좋네, 생일 선물이죠! 다 같이, 합숙이니까 다 같이 생일 축하해주는 거 어때요?”
사와무라는 조금 걱정했고, 뜻밖에 히나타도 우려의 목소리를 냈으나 웬일로 코치는 흔쾌히 허락했다. 그 역시 스가와라의 이야기를 조금 들은 참이었다. 어차피 내일은 일정 느슨하니까. 우카이는 그렇게 말하며 사와무라의 어깨를 툭 쳤다.
다음 날 오후 연습까지는 그럭저럭 조용했다. 조용하기보다는 아무 일도 없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리라. 사와무라는 각 학교 주장들에게 동의를 구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들도 자세히는 몰라도 카라스노 부주장이 생일에 무슨 트라우마가 있더라, 그래서 많이 힘들어하더라 정도는 알고 있었으므로 기뻐하며 동의했다.
오후 연습이 끝나고, 개인 연습 시간이 주어질 시간이었다. 스가와라는 수건로 목의 땀을 닦으며 코치의 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우카이는 개인 연습을 하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체육관 밖으로 스가와라를 끌고 나갈 뿐이었다. 다른 부원들과 타교 부원들은 그 뒤를 따랐다.
“우카이 씨, 왜 개인 연습 안 하고……."
그 순간이었다. 하늘에서 펑, 하는 소리가 나더니 아름다운 불꽃들이 하늘을 수놓았다. 스가와라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불꽃놀이는 계속 이어졌다. 작지만 예쁜 불꽃놀이였다.
니시노야가 스가와라를 보고 웃었다.
“생일 축하해요, 스가와라 선배. 미니 마츠리.”
“큰 하나비花火는 아니지만, 선물이야.”
니시노야 옆에서 불꽃을 쏘아 올리는 봉을 들고 있던 사와무라가 말했다. 사와무라는 유쾌하게 웃었다. 엔노시타는 옆에서 조금 미안해했다. 쿠로오는 켄마를 데리고 와서 스가와라에게 생일 축하 인사를 건넸다. 아카아시는 언제 왔는지 옆에서 나란히 축하 인사를 했다.
마지막 불꽃이 쏘아 올려지고, 언제 준비했는지 다들 작은 선물들을 건넸다. 스가와라는 여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 못했다. 다만 그 눈에 약간의 눈물이 서려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보면 꽤 많은 인파였다. 그들이 건네는 인사를 하나하나 전부 받아주는 스가와라는 기뻐 보였다. 사와무라는 그가 이렇게 행복하게 웃는 것은 오랜만이라고 생각했다. 모두들 그 생각을 한 것 같았다.
어느새 조금씩 울고 있던 스가와라가 입을 열었다.
“감사하고, 정말 감사합니다. 아……. 다들 아시나 봐요. 딱히 자랑할 만할 건 아닌데, 뭐 숨길래야 숨길 수가 없게 되었네요. 이런 생일 선물은 처음 받아 봐요.
우리 카라스노 항상 고맙고, 사랑하고, 다들 사랑합니다. 다른 분들도 정말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훌쩍이는 건 봐 주세요. 제가 감기에 걸려 버려서. 말 끝에 살짝 장난을 거는 것은 스가와라 특유의 위트였다. 좌중이 와하하 웃었다. 그렇게 그 날 밤은 깊었다. 스가와라는 작년과 달리, 아주 편안하게 잠을 잤다. 옆에 위험한 물건이라고는 하나도 두지 않고, 그렇게 푹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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