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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하나] 참을성 없는 고백이 부순 것은
언젠가부터 네게로 향하는 시선이, 향하려 하는 발끝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너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건 별로 충격적이거나 당황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게이였고 나와 친했던 너는 꽤 잘생겼을 뿐 아니라 내 이상형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사실을 딱히 부정하려 해본 적이 없었다. 학교 친구를 짝사랑한 경험은 없지 않았다. 다만 고백을 해본 적도 없었다. 당연했다. 성적 지향을 막 깨달은 사람들과는 달랐다. 내가 게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지도 꽤 됐고, 그동안 청소년 성소수자가 어떻게 되는지도 많이 봤다. 연애 경험도 있었다. 그것이 이어진 아웃팅 경험도 있었다. 현실이 어떤지는 몸으로 충분히 실감했다. 그래서 나는, 고백을 해본 적이 없었다.
너를 짝사랑할 때에도 다를 바는 없었다. 고백을 하고 싶었느냐, 물으면 할 말이 없다. 누군가에게 연정을 품었는데, 그에게 더 다가가고 싶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참아야 했다. 나는 졸업할 때까지 네게 있어 같이 배구부를 했던 친구 정도여야 했다. 그렇게 늘 생각해왔다.
그래서, 나는 내가 네게 고백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날은 새벽까지 잠을 잘 자지 못했다. 피곤했다. 그래서 모든 시간을 딱딱한 학교 책상을 침대 삼아, 어깨를 웅크려 모은 팔을 베개 삼아 엎드려 자며 보낼 계획이었다. 3교시가 끝나는 종소리가 울렸을 것이다. 자느라 듣지 못했지만, 일어나 보니 3교시 쉬는 시간이었으니 틀림없었다. 너는 내가 자는 새에 우리 반 교실에 들어와 나를 깨웠다. 나는 분명 머리가 엉망일 거라고 생각하며 부스스 일어났다. 평소 외모에 대해 관심이 많은 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한 손으로 가리며, 네 두꺼운 눈썹을 눈에 담았다. 너는 웃었다. 대체 어젯밤 뭘 했기에 세 시간을 내리 자냐는 거였다. 앞선 쉬는 시간에 계속 들렀는데 참 꾸준히도 자고 있었다고 했다. 조금 부끄러운 기분이 들어, 그래 그렇게 날 찾은 이유가 뭐였냐고 볼멘소리로 물었다. 너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들고 있던 종이봉투를 쓱 내밀었다. 종이봉투는 고급스러운 디자인에 장식적인 문체로 프랑스어가 적혀 있다. 프랑스어를 모르는데도 그 단어가 쓰인 형태는 알아볼 수 있었다. 일본 내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베이커리의 상표였다. 죽기 전에 꼭 가 봐야 할 베이커리를 꼽는다면 단연 첫 손가락을 차지할 베이커리였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 네게 그 베이커리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았다.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슈크림을 만드는 곳이라며 떠벌렸던 기억이 났다. 나는 설마, 싶었지만 조금은 기대하는 마음으로 봉투를 열었다. 슈크림빵이었다. 가장 먹고 싶었던 슈크림빵이었다. 바로 전만 해도 노곤함이 잔뜩 묻어나는 얼굴이었을 것이 분명한데도, 참을 수 없이 기뻐져 네 목을 끌어안고 고맙다고 소리쳤다. 그때만큼은 분명히 연모의 마음을 잊었었다. 그렇게 확신할 수 있다. 너는 조금 당황스러웠는지 내 이름을 작게 부르다가 따라 웃었다. 슈크림 없이 어떻게 살래, 핀잔을 주면서도 내 반응에 만족한 게 틀림없었다.
분명 아무런 감정 없이 너를 껴안았고, 너도 자연스럽게 받아 주었는데. 분명 그랬는데. 네가 교실을 나가고 얼마 있지 않아 너를 껴안았다는 사실이 너무나 대단하고 크게 다가왔다. 그 장면이 초고속 비디오로 스무 번은 재생되었다. 덕분에 자기도 힘들었다. 나는 4교시를 졸다 네 생각을 하다 졸다 네 생각을 하며 보내야 했다. 그 시간 동안 깨달았던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나는 생각보다 훨씬 많이 너를 좋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껴안았던 순간을 떠올리면 심장이 거세게 뛰며 얼굴이 참을 수 없이 달아올라 미칠 것만 같아지는 것이다. 네가 사다 준 슈크림빵을 내려다보며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종이에 마츠카와 잇세이松川一静 네 글자를 종이에 적는 것밖에 없었다. 마츠, 소나무. 소나무 같은 사람은 내게 그 슈크림을 왜 사다 준 걸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당장 나무 조각이라도, 소나무 조각이라도 있었다면 그 거친 표면에 하나마키 타카히로花巻貴大라는 글자를 아로새기고 싶었다. 조각칼로 마음껏 후벼파고 칼자국을 내어서 종이봉투에 적힌 베이커리 상표 같은 장식적인 글씨체를 영원히 남길 작정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소나무가 없었다. 그 나무는 내 것이 아니었다. 나는 쓴 입맛을 다시며 슈크림빵이 든 종이봉투를 가방 안에 깊숙이 밀어넣었다.
이번에는 들을 수 있었던 종소리가 울렸다. 어쨌든 너를 만나 고맙다고 인사는 하고 싶었다. 너 역시 하나쯤은 먹었으리라 생각하면서도 슈크림빵을 두 개 챙겼다. 하나마키, 점심 먹어야지, 하고 부르는 친구에게 대충 대답해 주고 교실 문을 열어젖혔다. 네 반의 담임은 눈치가 빠른 편이 아니었으므로 몰래 들어가 도시락을 먹는 네 옆에 앉아 얘기하다 가면 될 일이었다. 너를 떠올리니 괜시리 얼굴을 보기 민망해져 실내화를 질질 끌며 복도를 걸었다. 그러나 몇 걸음 가지 않아 맞은편에서 네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너 역시 몰래 와 떠들다 갈 생각이었던 것 같았다. 나는 웃음지으며 하이파이브를 하기 위해 손을 들었다. 짝, 하고 마주치는 손바닥처럼 나도 네게 팟, 하고 가볍게 고백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잠깐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곧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너 역시 점심을 거를 생각이었으므로 운동장 벤치에 가서 슈크림빵을 먹기로 했다. 가는 길에 마음이 간질간질해져 참는 데 꽤 애를 먹었다. 일부러라도 인내심을 길렀던 건 좋은 선택이었다. 벤치에 다다라 앉자마자 빵의 겉포장을 뜯었다. 그렇게 먹고 싶었느냐고 네가 물었다. 나는, 하고 입을 열었다. 나는, 그렇게 이 빵이 먹고 싶었던가. 그렇게 묻는다면 당연하다. 알게 됐을 때부터 가고 싶어했던 베이커리였다. 호평 일색을 넘어 악평이 없다는 그곳. 그러나 이 빵을 보자마자 너를 껴안았던 건 무슨 까닭에서였을까. 내가 그렇게 슈크림빵을 좋아했던가. 그렇게, 좋아했던가.
나는 답을 알아냈다. 아니, 사실은 원래부터 알고 있었다. 다만 모른 척했을 뿐이다. 모른 척한다는 사실조차 모른 척했을 뿐이다. 그저 부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무엇을, 하고 묻는다면 답은 많다. 우리의 관계를, 우정을, 배구부의 균형을, ……나만의 짝사랑을. 생각해 보면 나는 인내심을 별로 잘 기르지는 못한 것 같다. 조금 더 참을성을 키웠어야 했다. 그러니까 이건 오직 내 능력 부족으로 일어난 일이다. 너는 그냥 나만을 비난하면 된다. 저 호모새끼가, 로 시작하는 욕은 참 많다. 그렇게 나를 부수면 된다.
저기, 있잖아.
나는,
…….
짝사랑이 부서졌다. 조각조각 깨져 눈앞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 파편이 이룰 모양은, 마치.
참을성 없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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