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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스가오이] 그날의 키스는 짰다
스가른 합작 제출용으로 쓴 글입니다.
키워드는 [키스]였습니다.
봄이 작별 인사를 고하려는 참이었다. 카라스노 고교 체육관에서는 배구부원들이 팀을 나누어 연습경기를 하고 있었다. 어느새 부쩍 더워진 날씨에 부원들의 얼굴에서는 땀이 비처럼 흘렀다. 스가와라의 팔뚝에 맺힌 땀방울도 주륵 흘러내려 바닥을 적셨다. 마침 사와무라 팀은 승리로부터 단 1점만을 앞두고 있었다. 네트 반대편에서 날아온 공을 사와무라가 리시브해 카게야마에게로 이어 주었다. 카게야마가 토스한 공이 히나타의 손을 거쳐 선 안으로 정확히 꽂혔다. 사와무라는 환호성을 지르며 하이파이브를 하는 둘을 보며 웃다가 휴식을 외쳤다. 스가와라는 그런 사와무라에게 다가가 유쾌하게 웃으며 등을 퍽 쳤다. 사와무라는 언제나처럼 볼멘소리를 했다.
그런 일상이었다.
그리고 그런 일상 속에서는 스가와라만의 작은 비일상이 피어나고 있었다.
좋아해, 다이치.
전하고 싶은 말이다. 사와무라를 앞에 두고 있을 때면 언제나 입 안에 맴도는 말이다.
스가와라는 스스로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입 밖으로 내뱉으려고 할 때면 항상 그 웃는 얼굴에 막혀 또 다시 삼켜 버리곤 하는 것이다.
스가와라는 사와무라를 좋아했다. 연애하고 싶었고, 손도 잡고 싶었고, 그 이상의 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연애감정으로 사와무라를 좋아하는 만큼, 친구로서도 그를 정말 좋아했으므로 얼굴을 마주할 때 어색해진다던가 사이가 틀어진다던가 하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었다.
짝사랑을 하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이, 스가와라는 두려워했다. 결국 매일을 사와무라 앞에서 돌아서며 보냈다. 바람은 따뜻하다 못해 후덥지근했으나, 스가와라는 왠지 바람이 지나간 자리가 싸늘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쓸쓸했다.
“다이치. 나 오늘은 갈 데가 있어서 같이 못 가겠다, 미안.”
“어, 그럼 아사히랑 먼저 간다. 내일 봐, 스가.”
스가와라는 아즈마네와 사와무라에게 손을 흔들고 뒤돌아섰다. 사실 갈 곳 따위는 있지도 않았다. 그저 사와무라와 나란히 서서 길을 걷고, 눈을 마주치고, 잘 가라 인사하는 것이 오늘따라 어렵게 느껴졌다. 뭐냐 진짜…… 어린애도 아니고, 하고 중얼거렸다.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스가와라는 뛰기 시작했다. 발이 땅을 박차는 느낌은 언제나 짜릿했다. 그 짜릿함에라도 몸을 맡겨 잡념을 없애고 싶었던 까닭이었다. 발은 정처 없이 헤매다 어느새 동네를 벗어났다. 반짝이는 눈물도 발이 가는 길을 따라 흩날렸다.
빠르게 앞뒤를 왕복하던 다리의 움직임이 점차 느려졌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스가와라는 천천히 숨을 골랐다. 붉어진 눈가를 손으로 쓱 훑고 나서야 주위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헉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여기 어디지.
처음 보는 곳이었다. 미야기 현 내인 것에는 틀림이 없었으나 도통 어느 쪽으로 온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주머니를 뒤져 휴대전화를 찾았으나 이내 아침에 깜빡하고 집에 두고 온 것이 생각났다.
허탈감에 맥이 빠져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그 와중에도 사와무라가 보고 싶다는 게 웃기는 일이었다. 멈췄던 눈물이 다시금 흐르기 시작했다. 다이치, 다이치, 하고 하염없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사와무라가 이 꼴을 보았다면 뭐라 말했을지 모른다. 그런 생각이 또 자신의 생각을 지배하는 것을 느끼면서, 스가와라는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행인들은 그를 곁눈질로 내리 힐끔힐끔 훔쳐보았지만, 그 처연한 모습에 어느 누구도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리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스가와라 쪽으로 어떤 남자가 타박타박 걸어왔다. 스가와라는 남자를 보지 못했다. 그가 눈치채지 못하자 남자는 손을 뻗고 말을 걸었다.
“사와야카 군?”
스가와라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자, 남자는 그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사람 홀리네, 라고 생각해 왔던 그 미소였다.
“오이카와…….”
오이카와는 생각보다 끈질겼다. 자리를 피하는 스가와라를 계속 따라다니며 왜 울고 있었는지 끊임없이 물었다.
이렇게 민망할 데가 없었다. 다 큰 남자가 큰길에 앉아서 운다니, 완전 추태잖아. 스가와라는 얼굴을 돌리며 생각했다. 그와 동시에 한편으로는 짜증이 치밀기도 했다. 가뜩이나 기분은 최악까지 치달았고, 우울감이 하늘을 찌르는데 옆에서 귀찮게 하는 골칫덩이가 달가울 리 없었다. 슬슬 한 마디 할까 생각이 들던 차에 오이카와가 말 그대로 몸 쪽 꽉 찬 돌직구를 날렸다.
“사와야카 군 외로운 걸까나~ 오이카와 상이 도와줄까?”
스가와라는 그 말에 그만 폭발해 버리고 말았다. 쏙 들어갔던 눈물도 울분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그래, 나 외로워! 근데 어떡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다이치는 게이도 아닌 거 같고, 난, 흑, …….”
오이카와는 조금 놀란 듯 보였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고 스가와라의 등을 토닥였다. 스가와라는 빠르게 흥분했던 만큼 빠르게 진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 번 시작된 생각은 멈출 수 없었다. 사와무라를 생각하고, 우울해지고, 우울하니 사와무라가 생각나고, 사와무라가 생각나서 우울해졌다.
“괜찮아졌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오이카와는 돌연 눈빛을 바꿨다. 평소의 상냥한 표정이 아니었다. 굳이 언어로 표현하자면― 미묘했다. 그래, 더없이 미묘한 눈빛이었다. 스가와라는 생각했다. 아, 내가 이 아이를 좋아했다면 이 눈빛에 반했을지도 모르겠다.
오이카와는 이어 말했다.
“외로우면, 나랑 키스하자.”
뜬금없는 말이었다. 아니, 뜬금없기 이전에 말이 안 되는 제안이었다. 방금 전의 발언으로 사와무라에게 감정을 품고 있다는 것을 밝힌 셈이다. 애초에 연인도 아닌 사람에게 키스하자고 당당히 말할 수가 있는 것일까. 혼란스러움에 머리를 짚었다. 놀랄 기운도 없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난 다이치를 좋아하고…… 아니, 그 전에 우린 연인도 아니잖아?”
“아니면 뭐 어때? 넌 외롭고, 나도 외롭고. 오이카와 상 꽤 키스 잘 한다구요? 파트너라고 생각해, 파트너라고.”
황당했달까, 어이가 없었달까. 당당하게 본인이 키스 실력을 자랑하고, 파트너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는 모습이 충격적이었다. 스가와라 사전에는, 글쎄, 존재하지도 않던 개념이 아니었을까. 느긋한 표정의 오이카와를 마주본 채, 발걸음을 슬금슬금 뒤로 옮겼다. 하지만 오이카와는 쉽게 넘어가 주지 않았다. 그 가공할 말솜씨로 조리 있게 설득하는 것이었다. 내용을 찬찬히 들어 보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지만, 오이카와가 혀를 놀린 결과물은 이야기에 조금의 조미료를 첨부한 것이었기에 스가와라는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조금의 조미료를.
스가와라는 그만 악마의 꼬드김에 넘어가고 말았다.
“…… 진짜? 여기서?”
고개를 끄덕이는 오이카와를 보며, 스가와라는 할 말이 없어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오이카와가 그를 데리고 온 곳은 다름 아닌 근처 공중화장실이었다.
무슨 AV도 아니고……. 불만스레 중얼거렸다. 오이카와는 풋 웃고 한 마디 할 뿐이었다.
“하자.”
스가와라는 뻣뻣하게 굳은 채 오이카와를 쳐다봤다. 입술이 바짝 말랐다. 그래, 정 그러면 한 번 하자고 동의하긴 했지만 키스 경험이 전무한 스가와라였다. 기껏해야 입술이 살짝 부딪히는 뽀뽀밖에 해본 적이 없었다. 여유롭게 자신을 바라보는 오이카와의 시선을 피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오이카와는 팔로 천천히 스가와라를 감싸 안았다. 웬만해서는 놀란 티를 많이 내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스가와라가 몸을 살짝 떨었다. 얼굴을 한 손으로 잡고 엄지로 볼을 부드러이 쓸었다. 스가와라는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것을 느꼈다. 얼굴이 금세 달아오른 것만 같았다. 오이카와는 스가와라의 표정 변화를 눈치채고는 슬쩍 웃으며 벽 쪽으로 그를 밀어붙였다. 스가와라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오이카와는 고개를 숙였다. 입술이 서로 맞닿았다. 스가와라는 오이카와의 목에 팔을 감았다. 오이카와는 목을 사선으로 꺾었다. 호흡이 가빠졌다. 떨어질 줄을 모르는 입술 사이로 타액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스가와라의 눈에서도 어떤 액체가 한 방울 떨어졌다. 마침내 오이카와가 혀로 입술을 쓱 훑으며 허리를 폈을 때, 스가와라는 웃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그렇게 웃었다.
오이카와의 도움으로 무사히 집에 돌아간 스가와라는 종종 오이카와를 만나러 오곤 했다. 둘은 꼭 공원 같은 곳에서 만나 근처의 공중화장실로 들어가곤 했다. 그렇게 들어가 한참을 그 안에서 있다가, 스가와라가 눈가를 닦으며 먼저 나오면 오이카와가 따라 나오는 것이었다. 둘이 만나는 횟수는 점점 잦아져서 몇 개월이 지나자 일주일에 한 번 꼴로 만나곤 했다. 열에 아홉은 주말에 만났지만, 가끔은 주중에도 밤늦게 만나곤 했다. 둘 다 저녁 연습이 있었기에 먼저 끝나는 사람이 서로의 학교 쪽으로 갔다. 대개 카라스노가 더 빨리 끝나는 편이었는데, 그런 날에 스가와라는 사와무라의 눈치를 보며 먼저 가라고 손을 흔들었다.
한편, 사와무라는 요즘 들어 스가와라에게서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스가와라가 갈 곳이 딱히 없음에도 최근에는 부쩍 자신과 아즈마네를 먼저 보낸다던가, 아오바죠사이의 이름만 나오면 괜히 몸을 굳히는 것 등이 그것이었다.
아즈마네에게 의견을 물었으나, 아즈마네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괜히 과장해서 생각하는 건가 싶기도 했으나 틀림없었다. 3년 동안 얼굴을 맞대고 지낸 스가와라였다.
‘뭔가가 잘못된 거야. 내가 모르는 뭔가가.’
사와무라는 무던히 고민했다. 헷갈리지는 않았을까, 아니라면 그 이유가 뭘까. 뭔가 힘든 일이 있던가. 그러나 답은 나오지 않았다. 당연한 결과였다.
“다이치, 오늘 먼저 갈래? 나 갈 데가 좀...”
사와무라는 이때라고 생각했다.
“어딜? 어딜 가는데?”
“…… 응?”
“스가, 너 요즘 좀…….”
뭐라고 해야 하지. 좀 이상하다? 수상하다? 거짓말하는 것 같다? ― 그런 걸 말할 수가 없잖아! 사와무라는 절망에 가까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웃으며 스가와라의 인사를 받아 주었다.
아즈마네와 나란히 서서 체육관을 나오는 길,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간단했다. 무엇을 하는지 알고 싶으면 미행해서 지켜보면 되는 일이었다. 양심에 찔리는 일이었지만 그런 것을 따질 여유가 없었다. 스가와라는, ‘그’ 카게야마가 알아챌 정도로 평소와 달라 보였으므로. 시간이 없었다. 사와무라는 낮고 빠르게 상황을 설명하고 아즈마네를 보냈다. 체육관 뒤편으로 슬금슬금 숨어드는 중이었다. 익숙한 져지가 보였다.
“어라……. 언제 왔어, 오이카와?”
“아~까! 놀라게 해 주려고 먼저 왔지.”
“뭐야, 그게…….”
스가와라가 피식 웃었다. 사와무라는 여차하면 뛰어나가 정찰하지 말라며 엄포를 놓을 생각이었는데, 스가와라가 익숙하게 그를 맞는 순간 머리가 멍해질 뿐이었다. 혹시 스파이인가, 싶은 생각이 아주 잠깐 들었으나 곧 떨쳐 버렸다. 스가와라도, 오이카와도 경쟁 팀에게 정보를 넘겨주는 행동을 할 사람은 아니었다.
그럼 대체, 뭐 하러 온 거야.
사와무라가 불안하게 중얼거리는 틈이었다. 오이카와와 사소한 장난을 치던 스가와라가 그에게 입을 맞췄다.
순간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사와무라는 자신의 몸을 조종하는 리모컨이 있다면 누군가 일시 정지 버튼을 눌렀으리라 짐작했다. 더 당황스러운 것은 익숙해 보이는 둘의 태도였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키스하는 둘은 누가 봐도 다정한 연인의 모습이었다.
사와무라는 토기를 느꼈다. 아래에서부터 올라오는 메스꺼움에 입을 막았다. 도저히 더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체육관 앞까지 걸어갔다. 발을 질질 끄는 소리에 둘이 흠칫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스가와라는 불에라도 덴 듯 화들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사와무라를 바라보았다.
“다, 다이치…….”
사와무라는 점점 심해지는 토기 탓에 미간을 찌푸리고 둘을 쳐다보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공기 통할 틈 없이 꼭 껴안고 있던 이들이었다.
“알아서 해.”
“다이치, 그런 거 아니야.”
“됐어. 적당히, 욱…… 적당히 하고 가, 오이카와.”
사와무라는 조금 미적거리다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스가와라, 너도.
스가와라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언젠가, 서로가 ‘스가’와 ‘다이치’로 불리기 시작했을 때 이후로 사와무라는 단 한 번도 스가와라를 완전한 성으로 부른 적이 없었다.
스가와라는 사와무라를 쫓아갔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당장이라도 뛰어가려는 스가와라의 손목을 잡은 오이카와가 짧게 말했다.
“스가와라, 너 지금 나랑 하고 있잖아.”
그 말에 스가와라는 다리에 힘을 풀었다.
오이카와는 다시 입을 맞췄다. 입술을 떼면 항상 스가와라가 웅얼거리는 소리로나마 사와무라를 불렀기 때문에, 오이카와는 그를 계속 놓아주지 않았다.
그날의 키스는 짰다.
다음 날 아침, 체육관은 여느 날처럼 활기찼다. 다만 평소와 다른 점이라면, 주장이 힘없어 보인다거나, 부주장의 눈가가 잔뜩 부어올랐다거나 하는 아주 사소한 것들이었다. 또 이질적인 점이라면 스가와라가 계속 사와무라를 부르는데도 그는 모른 척하거나 자리를 피하는 일이 많았다. 사정을 모르는 1, 2학년은 그저 눈치를 볼 뿐이었다.
아침 연습이 끝나고, 사와무라와 스가와라는 라커룸에서 마주쳤다. 스가와라는 때를 놓치지 않고 말을 걸었다.
“다이치.”
“…….”
“나 그 애랑 아무 관계도 아니야.”
오이카와 이야기였다.
“아무 관계도 아닌데 키스를 해, 넌?”
“…… 어쨌든,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니까…….”
“키스하잖아. 키스했잖아. 해왔잖아. 지금까지 그랬잖아. …… 아니야?”
스가와라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사와무라도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스가와라가 마침내 입을 열자, 사와무라는 답지 않게 말을 잘랐다.
“변명하려면 그거나 먼저 보고 말해.”
휴대전화를 가리키는 동작에, 스가와라가 휴대전화 화면을 보았다. ‘오이카와’라고 쓰인 딱딱한 폰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스가와라가 당황하며 전화기의 전원을 끄자, 사와무라는 그대로 라커룸을 나가 버렸다.
사와무라는 악의를 가지고 하는 말이 아니었다. 전부 사실이었다. 오이카와와 스가와라는 연인은 아니었지만 분명히 어떤 언어로 정의될 수 있는 관계였다. 당당하게 대답해 주지 못해서 미안해, 다이치. 스가와라는 텅 빈 라커에 대고 사과했다. 고개를 푹 숙였다.
너 때문에 시작한 일이었는데, 결국엔 너 때문에 망가졌구나.
휴대전화 단축번호 2번을 꾹 눌렀다. 얼마 있지 않아 들린 목소리는 지겹게도 상쾌했다.
「에, 아까 왜 전화 안 받았어! 오이카와 상 슬펐다구?」
“…… 오이카와. 이제 그만하자.”
「뭐…….」
“알잖아. …… 다이치, 다이…… 으응.”
휴대전화 너머에서는 답변이 없었다. 침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알겠어. 뭐, 방법이 없다면.」
“…… 응.”
“오이카와.”
「왜?」
“나, 좋아했지.”
역시 답변이 없었다. 무슨 대답을 할까 망설이는 것이라고, 스가와라는 그렇게 이해했다.
“고마웠다. …… 미안해.”
「…… 미안하면 우리한테 제대로 한 번 밟혀. 그럼 사과 받아줄게!」
오이카와는 끝까지 쾌활한 척을 했다. 스가와라는 바람 빠지듯 웃었다. 강한 척은 힘들다.
“그럼 끊는다. 번호는…… 지울게.”
「응. …… 잘 지내.」
미련 없이 오이카와의 번호를 지웠다. 메일도 전부 지워 버렸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뿐이었다. 스가와라는 조용히 울음을 삼켰다.
사와무라는 체육관 근처 구석에 있었다.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는지 살짝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이름을 부른 사람을 돌아봤다. 스가와라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들고 온 휴대전화를 내보였다.
“지웠어.”
“…… 어?”
“전부 지웠어. 오이카와 번호도, 주고받은 메일이나 통화기록 같은 것도 전부 지워 버렸단 말이야.”
“…… 응.”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잖아.”
“…….”
울지 않으려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울음이 터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펑펑 우는 스가와라를, 다이치는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나를,”
“으응?”
“좋아했어?”
“…….”
사와무라의 눈에도 물기가 어렸다. 나를, 좋아했어? 스가와라는 그 두 단어만 반복하는 그를 멀거니 쳐다보았다.
“있잖아, 스가.”
난 너 안 외롭게 할 수 있어.
오이카와 같은 놈한테 갈 필요 없게 해 줄게.
내가 너를 너무 좋아해서, 네가 귀찮아할 때까지 좋아해줄 수 있는데,
넌 어떻게 생각해.
스가와라의 눈에서 눈물이 투둑 떨어졌다.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크게 뜬 눈은 아까와는 다른 의미의 눈물을 함빡 가두고 있었다. 사와무라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그들은 이미, 너무나 많은 눈물을 흘렸다.
“다이치.”
“으응.”
“키스해 줘.”
“…… 그래.”
사와무라의 입술은 오이카와보다 더 투박하고, 거칠고, 서툴렀다. 그러나 더 달콤했고, 더 다정했으며, 더 사랑스러웠다.
그날의 키스는 싱겁지 않았다.
* * * * *
열심히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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