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히나] 마스크는 버려졌다
[스가히나] 마스크는 버려졌다
* 수위가 포함된 글입니다.
* 스가와라의 성격이 날조되었습니다. 캐붕 못 보시는 분은 보는 것을 추천드리지 않아요...
스가히나의 세 문장 :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뭐야, 겨우 그것 뿐이야?', '그때와 같은 상황이었다.'
https://kr.shindanmaker.com/484366
(시점상 문장을 약간 수정했습니다)
드물게 웃음을 짓고 있지 않은 스가와라의 밑에서, 히나타가 뜨거운 숨을 뱉었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목소리로 스, 스가와라 상, 하고 부르는 목소리는 꽤나 자극적이어서 그 위에 있는 사람은 더욱 흥분될 법도 했으나 스가와라에게서는 그런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살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히나타의 야한 신음도 따라 들렸지만, 스가와라의 얼굴에는 딱히 이렇다 할 표정 변화가 없었다. 그럼에도 히나타는 황홀한 듯 쾌락을 한껏 맛보고 있었다.
스가와라가 갑자기 강하게 박아오자, 고운 편인 히나타의 얼굴이 쾌락과 흥분으로 일그러지며 농염한 신음을 내뱉었다. 조용히 해. 냉정하게 내뱉는 스가와라였지만 히나타에게는 그 말이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스가와라는 짜증스레 한 차례 더 강하게 박으며 한 손으로 흐트러진 머리를 살짝 넘겼다. 그는 이 일련의 행위에 아무런 감흥이 없는 듯 보였다. 의미 없이 입술을 한 번 핥는 스가와라의 눈이 부들부들 떠는 히나타를 향했다.
왜? 힘들어? 스가와라가 피식 웃었다. 히나타는 아, 아니요, 하고 간신히 말하면서도 스가와라가 웃는 모습에 얼굴을 살짝 붉혔다.
스가와라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히나타가 그에게 흥분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나쁘기라도 한 것처럼 그는 일부러 스팟만을 찾아 박기 시작했다. 묘하게 짜증까지 품은 듯한 허릿짓은 어쩐지 히나타가 쓰러지기만을 바라는 것 같았다. 스가와라는 히나타가 몰려오는 고통에 그만해 달라고 비명을 질러도 멈추지 않았다. 그는 히나타가 쾌락과 고통에 허덕이다 울며 애원할 때까지 놓아 줄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히나타가 결국 눈물에 젖은 얼굴로 신음인지 말인지 모를 것을 입 밖으로 잔뜩 쏟아내고서야 스가와라는 히나타의 안에 사정했다.
뭐야, 겨우 그것뿐이야? 아까 나한테 박아 달라고 애원하던 히나타는 어디로 가 버렸나 봐? 스가와라는 냉소적인 말을 뱉으며 앞을 닦고 옷을 입었다. 히나타는 누워 있는 채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바지 주머니에서 부실 열쇠를 꺼내 히나타에게 던졌다. 알아서 치우고 잠가. 저녁 연습은 나오던지 말던지. 날이 선 말만을 남겨두고 그는 부실 문을 닫았다. 아, 짜증 나.
수업이 모두 끝나고 스가와라는 체육관으로 향했다. 그는 히나타가 연습에 참여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온갖 날카로운 말들로 괴롭힌 건 둘째 치고, 그렇게까지 쑤셔 뒀는데. 움직이기도 힘들 걸. 아무렇지도 않게 더러운 말들을 중얼거린 스가와라가 철제 문을 젖혔다.
아, 스가와라 상 오셨어요? 먼저 도착해 서브 연습을 하던 카게야마가 스가와라에게 인사를 건넸다. 스가와라는 건성으로 인사를 받아주고 히나타는 오늘 안 올 거라는 말을 전했다. 카게야마가 놀라며 이유를 묻는 순간, 문이 다시 한 번 열렸다.
... 히나타? 스가와라가 숨을 헉 하고 들이마셨다. 히나타가 스가와라의 눈을 피하며 체육관 안으로 걸어갔다. 아니, 걸어갔다기보다는 몸뚱이를 이끌었다고 말하는 편이 옳았을 것이다. 스가와라의 생각대로 히나타는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카게야마가 멍청아, 뭘 했길래 제대로 걷지도 못해!? 하고 다그치자 평소라면 울컥해 대꾸했을 히나타가 어물어물 사과를 했다. 카게야마보다는 스가와라가 입구에서 더 가까이 있었기에, '카라스노 배구부의 착한 부주장 스가와라 선배'는 히나타를 부축하고자 가까이 다가갔다.
그 순간,
흠칫. 크지 않은 움직임이었지만 스가와라의 눈에는 보였다.
스가와라는 손을 거두었다.
카게야마가 곧장 히나타에게로 달려가 소리를 질러댔다. 곧이어 도착한 사와무라와 니시노야도 몸을 움직이질 못하는 히나타를 보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연습할 수 있다며 억지로 웃어보이는 히나타를 말리느라 애를 먹는 것 같았다.
평소의 스가와라였다면 마음 속에서 끓어오르는 짜증을 억누르고 걱정하는 표정을 지으며 다가가야 맞았다. 하지만 오늘, 스가와라는 그 표정이 지어지지 않았다. 그는 간신히 밖으로 나가 체육관 뒤에 흘러내리듯 주저앉았다.
스가와라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시간이 꽤나 지난 것 같았다. 시계를 들여다보니 본래 연습 시작 시간보다도 30분가량이 더 늦은 시간이었다. 체육관 뒤편은 수풀로 우거져 있어서 그 안에 공간이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못 찾은 것일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옆에 있었던 스가와라가 사라진 것을 알아챈 아이들은 분명 그를 찾아 나섰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연습에 나가기 싫었다. 오늘만큼은.
등을 편히 벽에 기대고, 잠이나 좀 자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가와라가 그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주황색 머리카락이 수풀 사이로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스가와라는 점점 수풀을 헤치고 들어오는 히나타를 응시했다. 여긴 어떻게 안 거야, 하고 차분히 물으니 히나타는 눈을 마주치지 않고 대답했다. 스가와라 상이니까요. 그 말이 마치 나는 스가와라 상을 전부 알고 있어요, 라는 것처럼 들려 스가와라는 얼굴을 미세하게 찌푸렸다. 그런 와중에 줄곧 입술을 세게 깨무는 히나타의 이가 그의 눈에 들어와 그 이유를 묻는 듯, 눈을 치켜떴다. 히나타는 대답을 피하다가 아파서요, 한 마디를 뱉었다. 생각해 보니 그 고통을 참고 여기까지 기어들어온 히나타가 대단할 따름이었다. 스가와라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아까는 조금, 심했다. 괜히 이 아이의 정신력이 엄청난 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저었다. 이 아이에 대해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알고 싶지 않다? 자신이 그렇게 생각한 것을 자각한 순간 오랫동안 잊고 있던 역겨움과 자책감이 몰려왔다. 그가 고개를 젖혀 머리를 벽에 세게 박으니 히나타가 놀라 작게 으응, 하고 소리를 냈다.
스가와라는 고개를 젖힌 채로 낮게 물었다. 처음? 히나타가 알아듣지 못하고 에? 하고 되묻자, 스가와라는 습관적으로 짜증을 내려다 그 자신이 신경질적으로 말하려던 것을 깨닫고 첫 경험이었냐는 말이었어, 하고 말했다. 히나타는 대답이 없었다. 처음이네. 스가와라가 침묵의 의미를 머릿속으로 해석했다. 제기랄, 하고 작게 욕을 내뱉은 스가와라가 히나타에게 손을 내밀었다. 히나타는 두려움에 몸을 살짝 움츠리다 스가와라를 쳐다보았다.
... 연습하러 가자.
가면을 쓰지 않은 스가와라 코시가 처음으로 히나타에게 다정하게 말해 보였다.
스가와라는 체육관에 맨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다.
히나타는 청소 시간에 분명 부실에서 기다린다고 말했었다. 스가와라는 그 곳에 가기 어려웠다. 아니, 갈 수 없었다. 착한 선배인 척 손을 내밀긴 했어도 부실은 다른 날도 아닌 바로 오늘 스가와라가 히나타를 참혹하게 짓밟았던 곳이었다. 그와 동시에 히나타에게 첫 번째 고백을 받았던 곳이기도 했다.
스가와라, 상! 좋아합니다! 긴장을 얼굴에 역력히 드러내고도 패기 있게 외친 히나타의 얼굴을 보고 어쩐지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이 아이는, 내 상냥한 모습을 보고 나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그런 생각에 스가와라는 누구 앞에서도 쉽게 내보이지 않았던 자신의 원래 모습을 내보였었다. 거친 표현으로 히나타를 상처주고, 깎아내리고, 도구처럼 대하고. 무거운 눈물을 떨어뜨리며 돌아간 히나타는 스가와라의 예상과 달리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다음 날도 스가와라를 사랑했다. 언제나 맹목적인 사랑을 쏟으며 제 모든 것을 바쳤다. 히나타가 그러면 그럴수록 스가와라는 연습에서의 상냥한 자신과 히나타 앞에서의 거친 자신 사이에서 갈등하며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고 히나타에게 상처를 입혔다. 히나타가 자신의 앞에서 얼굴을 붉히거나 감정을 드러낼수록 스가와라는 방어기제 뒤에 숨어 칼을 겨눴다.
도대체 왜 나는 히나타가 등을 돌릴 때까지 내 잘못을 깨닫지 못했던가. 그 동안의 자신이 너무나 역겨워 스가와라는 체육관 밖으로 나가 맨 땅에 헛구역질을 해댔다.
스가와라는 갑자기 헛구역질을 멈췄다. 당장 스가와라가 할 일은 히나타에게로 달려가 무릎이라도 꿇고 용서를 비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스가와라의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부실 문이 벌컥 열렸다. 옆으로 누워 있던 히나타가 놀라 빠르게 일어나다가 골반에서 느껴지는 아픔에 신음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 순간, 눈 안에 담기는 모습에 히나타는 그의 시력이 심하게 나빠진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스가와라가, 오열하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며 미안하다는 말밖에 하지 못하는 스가와라를 보고 히나타는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해 눈을 끔뻑거렸다. 스가와라는 히나타의 손을 붙잡고 끊임없이 용서를 빌며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히나타는 스가와라의 등을 토닥이며 자신도 눈물을 흘리며 살짝 웃었다. 무슨 일인지 조금은 짐작이 간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히나타의 달래는 듯한 손짓이 효과가 있었는지 이내 눈물이 멎었다. 스가와라는 자연스레 히나타 위에 올라갔다. 그때와 같은 상황이었다. 다른 점은, 스가와라가 미소를 머금고 있다는 것과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냉정하고 거친 말도, 몇 분 전까지 쉼없이 했던 '미안해'도 아닌 '사랑해'라는 점. 그리고 또 하나를 꼽자면,
촉.
스가와라가 히나타의 입술을 부드럽게 감싸안았다는 점,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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