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카게] 눈물에 젖은 그림
[오이카게] 눈물에 젖은 그림
오늘도 다른 날과 같이 당신을 그렸습니다.
카게야마는 지우개를 들어 종이를 박박 문질렀다. 하얀 종이에 그려진 그림은 또 그렇게 속절없이 지워질 뿐이었다.
지우개를 내팽개치고 집어 든 연필은 다시 수많은 선을 그려냈다. 종이에 그려진 것은 누가 뭐래도 훌륭한 그림이었다. 하지만 카게야마는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종이를 한동안 뚫어지게 바라보다 잘게 찢었다. 누가 천재 아니랄까 봐, 지 맘에 안 든다고 종이까지 찢네. 누군가의 중얼거림이 귀에 들어왔지만 그는 상관하지 않았다. 카게야마는 그런 모습이 익숙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강사에게 꾸벅 인사하고는 학원을 빠져나왔다.
건물을 나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하늘은 한없이 검었다. 카게야마는 하늘을 물끄러미 문득 당신도 저 하늘을 보며 나를 생각한 적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이 실없는 것을 알아서 스스로도 한숨을 내쉬었다. 입에서 나오는 하얀 입김이 푸스스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카게야마는 문득 궁금해졌다. 과연 이 입김이 당신에게도 닿을 수 있을까. 말도 안 되는 생각만 계속 드는 이유는 머리가 복잡해서, 겠지. 그는 고개를 흔들고 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빨리 집에 가서 카레나 먹자. 속에 뭐가 들어가면 잡생각이 사라지겠지.
그렇게 뛰듯 걸었는데도 집에 가는 길은 멀었다. 발이 향하는 곳으로 고개를 떨어뜨리고 걷다 보니 익숙한 길이 보였다. 카게야마는 집에 도착했나 싶어 고개를 들었다.
허. 그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 바로 앞에 있는 건 다름 아닌 라이벌인 중학교 선배의 집 대문이었다. 심지어 그의 집과 이곳은 상당한 거리 차가 났다. 그는 힘이 빠져서 그곳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한쪽 어깨에 멘 화통이 탁 소리를 내며 땅에 부딪혔다.
나는 왜 이곳으로 왔는가. 카게야마는 길가의 돌을 집어들어 반대편의 담벼락에 던졌다. 문득 눈물이 났다. 이제는 웃기지도 않았다. 화통에서 그림 여러 장을 꺼냈다. 그림은 모두 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었다. 얼굴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 한 방울이 종이를 적셨다. 연필자국이 번졌다. 눈물 몇 방울이 더 떨어졌다. 선이 흐려졌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종이가 눈물에 젖어 우그러졌다.
카게야마는 종이를 내팽개쳤다. 그 와중에도 누군가가 생각나는 게 참 짜증날 따름이었다.
“흐윽, 와, 흑, 줬으면 좋겠습니다.”
눈물에 젖은 목소리로 닿지도 않을 혼잣말을 하고서는 또 눈물을 흘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는 모습이 퍽 안쓰러웠다. 카게야마는 그렇게 한참 우는 것에만 집중한 덕분에, 골목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머리카락을 잡아 쥐고 오열하던 그가 앞에서 비춰진 그림자를 눈치챈 건 그렇게 오랜 일이 아니었다. 오이카와 토오루는 허리를 굽혀 구겨진 종이를 주워 들고 유심히 살폈다.
“토비오쨩 선 진짜 내 취향 아닌 거 알아? 어라, 여기는 명암도 이상하네.”
카게야마는 눈물을 흠뻑 가둔 눈으로 오이카와를 쳐다보았다.
눈물이 한 방울 더 흘렀다.
*
토비오쨩. 그렇게 내가 보고 싶었어? 도대체 날 몇 장이나 그린 거야.
흑, 흐읍……. 흐윽.
울면서 노려보는 거 봐라. 안 무섭거든?
*
그리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생각하다, 연필, 붓 따위로 어떤 사물의 모양을 그와 닮게 선이나 색으로 나타내다.